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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종교사

빛나는 새벽별 2018. 8. 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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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류대영

 

출판사 : 청년사

 

가격 : 28,000원

 

 

       한국 종교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때, 기본적으로 국사시간과 함께 문과를 선택했다면 종종 접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미국 종교에 대해서는 단지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서 영국을 떠나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설하였고 그렇기에 미국의 국가의 시작은 기독교와 분리할 수 없는 기독교 국가임을 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먼저 미국 원주민들의 종교적 세계관을 알 수 있다. 북미 원주민들은 세상이 인간, 자연, 그리고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들이 서로 관계하고 영향을 주며 공존하는 하나의 커다란 집단으로 여겼지 이분법적으로 천사와 인간 그리고 악마와 같이 나누어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시시피인들이 옥수수를 추수했을 때, 또 아나사지인의 후손 현대의 주니족을 통하여서 아이의 탄생때 이루어지는 관습들, 그리고 원주민들이 그들이 살아가는 시간 그 자체가 모두 동일하고 거룩함이 묻어나오는 시간이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처럼 안식일과 같이 거룩한 날과 평일 등으로 나누지 않은 면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약간 벗어날 수 있겠지만 동양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화()와 순환을 중요시 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태극이 성질이라든지 오행, 음양 등에서 인간과 자연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 되어서 함께 나아가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동양에서만 생각된 것이 아니라 서양 옛 인디언들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기본적으로 사람이 주변 자연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대우 내지는 사고가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또 인간 자체도 크게는 자연 속에 해당되기에 그 원리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을 보면서 옛 사람들도 자연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지 현대와의 차이는 현대는 어느 정도 자연을 이용할 줄 알고 그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옛날 사람들에게는 자연은 숭배의 대상이고 거대한 즉 거스를 수 없는 원리였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옛 역사 어디를 보아도 샤먼에 대해서 볼 수 있다. 샤먼이란 사람과 자연, 즉 신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 기독교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선지자 내지는 제사장이 될 수 있겠다. 한국에서는 옛 역사에서 샤먼이 따로 다스리는 지방이 있을 정도로(삼한) 영향력이 컸음을 볼 수 있다. 나누어져 있다는 것은 왕의 영향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기에 애초에 샤먼의 영역을 인정해 준 것을 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서양 옛 인디언들의 생활이 주술과 기도는 생활의 기술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즉 생활 자체가 신과의 호흡으로 표현될 수 있었던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두 번째로는 인디언들이 자연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는 것이다. 즉 그들 가치관 속에는 대부분 이 세상과 분리되지는 않지만 그것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 세계의 존재를 믿었는데 그것에 한 일부가 자연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그들의 신관은 매우 다양하여서 짧게 일반화시키기 어렵다. 전지전능하고 전우주적인 유일신과 같은 신이 있기도 하고 범신록적으로 모든 사물에 신이 존재하기도 하고 동물과 식물 및 해나 비와 같은 자연현상과 관련된 신도 있다. 또 인간을 이롭게 하는 신령한 신이 있는 반면에 악한 신령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런 신 내지 자연 안에서 그 도움을 받아 풍족한 식량과 여러 가지를 얻고 생활에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언제나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계속 해 나갔음을 볼 수 있다.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현대에 있어서도 자연은 결코 쉽지 않은 존재이다. 오히려 예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자연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같이 나가야 할 존재이지 그 자체의 존재성의 가치에 대해서 인류는 크게 여념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북미 원주민들은 자연 그 자체를 감사하고 두려워하며, 즉 외경의 자세로 자연 자체가 나와 같은 일부로 나아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작고 세심한 것이지만 가치관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로는 카톨릭이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콜럼버스가 항해하여서 인도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헛수고인 도중 땅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지금은 북미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던 계기가 된 것도 영토싸움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이 있었고 또 거기에는 동방으로의 항로와 교역을 지배하려는 정치 경제적 욕망의 발현인 동시에, 에스파냐로부터 무어인과 유대인을 몰아내고 영적인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려던 종교적 열심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기독교 세력의 확장을 소망하던 당시 카톨릭 신도들의 신앙심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 당시 점점 세속화되어가던 교회를 개혁하여 초월적이고 영적인 기독교를 회복하려는 카톨릭 개혁운동이 일어난 것을 감안했을 때, 새로운 땅의 발견은 그런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종교라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하고 초월적인 신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하여서 섬기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일본에는 신이 20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일본의 경우는 약간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미국에 먼저 전해진 것이 기독교 자체가 아니라 카톨릭이었다는 것과 청교도 혁명 이전부터 조금씩 이런 종교적인 물결이 들어오게 된 것도 알게 된 것 중의 하나이다.

 

       네 번째로는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배려와 이해이다. 인디언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느 날, 모르는 사람들이 선조부터 일구어 놓은 땅에 와서 조금씩 영토를 빼앗아가고 믿고 있던 신에 대해서 부정하고 그들이 믿고 있는 신에 대해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을 반항하지 못하고 따르게 된 것에 대한 입장 말이다. 현재 인디언들은 미국이 보호하는 어떠한 지역 내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선조들은 그 땅의 주인이며 그 땅의 권리자들이다. 단지 힘이 없었기 때문에 화력 앞에서, 동족이 죽고 점차적으로 멸망되어가는 그리고 현재는 초라하게 물품을 만들어 판다거나 어떠한 행사로 먹고 살아가고 있는 인디언들을 보면서 미국 종교라는 단어 이전에 미국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의 주체인 인디언들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시대적인 흐름을 타고 국가와 국가 간의 싸움도 치열하고 한 치의 물러섬 없는 가운데 그 모든 나라들이 이 인디언들의 땅과 삶, 그리고 인디언들이 돈과 자원으로 보였을 것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대략 150년 정도 전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대국(러시아 일본 미국 중국의 )에 쌓여서 눈치를 보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의 무력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쨌든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터전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남들이 잘 살고 있는 터전을 빼앗아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작 그 땅의 주인에 대해서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부분은 아쉽다. 또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와중에서도 몇몇 인디언들은 그들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부분임을 알게 된다.

 

       다섯 번째로 기독교 안에서도 많은 파들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파들이 한번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다 시간차를 가지고 다른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위그노파(1562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스파냐 카톨릭교회(1565 플로리다), 성공회(1607 버지니아), 영국 분리주의자(1620 메사추세츠), 네덜란드 개혁교회(1624 뉴욕), 영국 청교도 (1629 메사추세츠), 영국 침례교(1638 로드아일랜드), 스웨덴 루터교(1630년대 델리웨어), 유대교(1654 뉴 암스테르담), 퀘이커(1650년대 메사추세츠), 장로교 (1684 메릴랜드) 등이 있다. 아직 종교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런 다양한 파들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게 된 계기 같다. 신대륙을 발견할 쯤에는 기독교보다는 압도적으로 카톨릭교의 우세였다고 할 수 있다. 교황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 교황의 힘을 무시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황이 약한 경우도 있었지만 카놋사의 굴욕을 통해서 교황의 힘이 월등하다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카톨릭과 기독교 둘 다 미국에 전파되어서 현재는 미국이 기독교의 국가이고 대통령 취임식에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것을 보면서 종교의 힘이 나라에 있어서 어떠한 것보다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섯 번째로는 생각보다 선교사가 미국으로 많이 파송되었다는 것이다. 선교사 생각하면 현재도 남자를 많이 생각하지만 그에 반해서 여자도 꽤 많이 파송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선교사님들이 미국에 가서 여성 단체와 함께 활발하게 사역하는데 환자를 돌보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여자 아이들을 가르쳤다.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한 사람들이 아프리카 노예들을 전도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고 이런 행동들이 누구도 기독교 전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아프리카 노예들에 대한 여성 선교사들의 관심은 그들이 믿던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행위였고 시대를 앞서가는 일이었다. 우리는 다음에 있어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진다. 특히 여자라면 지금이야 많은 제약이 풀려 있고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 있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냥 집안에서 조용히 있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런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소명을 위해서 이런 곳에 나아가서, 낮은 곳을 찾아가서 행동으로 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의 기독교라는 종교가 있을 수 있었고 또 그 기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말보다는 무엇보다 행동을 요구로 하는 종교이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혹은 십계명과 같은 것을 본다면 머리로 아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그 단계를 넘어서 몸으로 행하기를 원하는 종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교사님들은 미국 곳곳에서 누구보다 몸으로서 그런 것들을 잘 실천하고 자신의 삶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함을 지니셨던 분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곱 번째로는 현존하는 여러 교파들에 대해서이다. 앞에서는 장소와 시간 때를 이야기 했다면 여기서는 그 특징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장로교, 루터교, 침례교, 순복음교에 대해서 자주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왔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장로교가 16세기 영국 종교개혁의 와중에서 존 녹스를 중심으로 한 스코틀랜드의 칼뱅주의자들에서 발생한 것 또 개혁교회는 네덜란드를 시점으로 시작되었다는 것과 침례교인들은 회중교회의 강제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서 교회를 설립하고 시작하며 칼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 종류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알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통해서 대략적인 역사를 알 수 있었고 부족하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 미국이라는 땅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일어났던 인디언들의 탄압이 생각보다 잔인하고 생각보다 큰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인들로 인하여서 질병이 들어오고 수두 천연두 티푸스 콜레라 등으로 많은 원주민들이 죽고 또 진압 과정에서 많이 죽이고 그들이 우선적으로 들어와서 종교 즉 기독교를 강압적으로 주입시키고 믿게 하는 과정은 옳지 못했다. 약육강식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힘이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행사할 수 있지만 그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정복 말고 공존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침입하자마자 강요도 힘을 앞세워서 했다는 것이 접근의 방법에 있어 잘못이 아닐까 한다. 혹은 우리 나라가 그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유럽인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보여 질 수 있겠지만 이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현재 민주주의라는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고 여기서 명시되어 있는 것은 국민이 모든 일에 가장 우선되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을 존중하면서 그 하나하나의 개인의 권리까지 존중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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