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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사도신경 강해설교 본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도신경 강해설교는 그의 신분이었던 교수라는 것과 그가 속한 도미니크 수도회의 특징인 말씀을 생각해보면 가르침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설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인식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로 보았으며 각각을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설교의 특징은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며 예화 사용을 경계하였고 성서의 권위에 우선성을 두었다. 그에 따르면, 본질적 믿음의 대상에 속하는 것은 우리가 영원한 삶에서 누리게 될 것과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있다고 보았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에 해당하며 인성의 신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도신경 강해설교를 열두 조항으로 나누어 그리스도의 신성에 6가지, 인성에 6가지로 설명한다.
각 조항을 설명하는 일반적 구조는 1)전체에 관한 도입과 논증, 예시로 신앙 조항 설명, 2)오류 반박, 3)신앙생활과 영적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 4)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이 반드시 함양되어야 하는데 이유인즉 영혼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연합이 됨, 믿음 안에서 영생이 시작됨, 현재의 삶을 인도함, 우리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의 불신은 지성의 불완전함이 이런 의심을 제거해주고 인간보다 초월자의 말씀은 인간의 말보다 확실하며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믿음을 보증하는 것은 전능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항 “나는 한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신자들은 먼저 오직 한분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것을 배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종종 다수의 신을 생각하는데 이는 인간 지성의 연약함과 사람들의 아첨, 자녀와 친족을 향한 육적인 애정, 악마의 악의에서 시작된다. 또 세상에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 존재한다는 진리에 대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창조만 하나님께 귀속시키는 부류, 세상이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부류, 하나님께서 선재하는 질료로부터 세상을 만드셨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은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인식으로 인도되고 감사를 하게하며 역경 가운데 인내와 피조물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인도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인식하게 만든다.
2항 “그리고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과 함께 하나님은 아버지시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심을 믿어야만 한다. 아퀴나스는 여러 잘못된 주장을 논거하며 그들의 잘못된 점을 짚어가는데 포티누스는 그리스도가 본성상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아니라고 말한 점과 시간 안에서 존재하기 시작하셨다고 말한 2가지 오류를 범했으며 샤벨리우스는 삼위일체를 부정했기에 오류를 범했다고 설명한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피조물이었다는 것과 그가 가장 고귀한 피조물이라는 것과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한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고 성부와 함께 계셨으며 성자와 성부의 위격이 다르고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에 속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그 말씀과 닮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며 끊임없이 묵상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기시키고 자극을 줌으로 함께 나눠야 한다. 그리고 이는 삶의 실행과 동반되어야 한다.
3항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시며 그는 참된 육신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남자의 힘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나셨으며 신성과 인성을 완전하게 가지고 계시는 분이셨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이 견고해지고 소망이 고양되며 사랑이 불붙게 된다. 또한 우리의 영혼을 순결하게 지킬 수 있도록 인도되고 그리스도께 도달하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이 생겨나게 된다.
4항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그분의 수난과 죽으심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신자는 믿어야 하고 특별히 신성의 죽음이 아니라 인성의 완전한 죽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받아야 했던 필연성의 이유는 죄를 치유하고 행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영혼이 얼룩지며, 하나님께 모욕을 안겨주고 연약함에 빠진다. 또 처벌 받아야 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고 천국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수난은 이것에 대한 치유이고 이는 우리에게 확실한 유익이 있게 된다. 또 우리는 십자가와 동떨어져 있는 덕의 본보기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경멸하셨던 것을 경멸하고 추구하셨던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추구하면 안 된다. 혹 누군가가 겸손의 모범, 순종의 모범, 땅에 속한 것들을 경멸하는 모범을 찾는다면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으신, 그리고 십자가를 묵묵하게 인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한다.
5항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은 무덤 속에서는 육체와 함께 계셨고, 음부에서는 영혼과 함께 내려가셨다. 그리스도께서 영혼과 함께 음부에 내려가신 이유는 죄에 대한 모든 벌을 감당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친구들을 완전히 돕기 위해, 악마를 완전히 이기기 위해, 음부에 있는 성도를 구출하기 위함이셨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소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지고 자만한 마음은 물리쳐야 한다. 또 죄로부터 조심해야 하며 사랑의 모범을 배울 수 있고 이런 것들은 미사, 기도, 구제를 통해서 주로 일어난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과 음부의 벌이 있다는 두 가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른 이들의 부활과 차이점이 있는데 첫째, 자신의 덕으로 살아나심과(부활의 원인) 둘째, 불멸성(부활의 지속성), 셋째 수난(부활의 열매와 효력), 넷째 시점의 차이(부활의 시간)이 있다. 이런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우리는 먼저 죄로 인한 영혼의 죽음으로부터 의로운 생명으로, 영적으로 부활하기 위해 애써야 하고 빨리 부활하려고 해야 한다. 또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해 죄를 짓지 않도록 애써야 하고 죽음과 죄의 기회와 원인이 되었던 모든 것들을 피해야 한다.
6항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그리스도의 승천은 숭고하고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분이 올라가신 하늘이란 물리적인 하늘 위, 모든 영적인 본질 위, 아버지의 보좌를 의미한다.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합당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늘은 본성상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그분께 속한 것이며 그분의 겸손으로 말미암아 합당하기 때문이다. 그의 승천이 유익한 이유는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안전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그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7항 “그곳으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받는 이들이 심판자를 보는 것이 필요하고 사람으로서 이 직무를 맡으실 자격이 있으셨고 사람들의 절망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단지 하나님으로서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심판자이셨다. 우리는 심판자의 지혜와 심판자의 능력, 심판자의 불굴의 정의와 심판자의 분노로 인하여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며 심판의 두려움에 대한 치유책으로 선한 행위와 범한 죄들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것, 자선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8항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이다. 성령은 주님이시며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기에 살리시는 분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본질에 속하고 예배에 관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시며 거룩한 예언자들이 하나님에 의해 말함을 통하여 성령은 하나님과 동등함을 보여주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죄로부터 정화시키고 지성을 비추어주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계명을 지키도록 강제하하시며 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견고하게 하시고 우리가 의심에 빠질 때 우리를 권면해주시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9항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나는 믿습니다]”
교회는 회중과 같은 것이므로 거룩한 교회란 신자들의 회중과 같은 의미이고 이는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교회의 지체와 같다는 뜻이다. 교회는 단일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신앙의 단일성, 소망의 단일성, 사랑의 단일성을 가진다. 교회는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피로, 기름부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를 통하여, 하나님을 부름으로 이루어진다. 거룩해진 후에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영혼을 죄로 더럽히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또 교회는 보편성을 가지는데 지역에 대한 보편성, 구성하는 사람들의 조건에 있어서 보편성, 시간에 있어서 보편성을 가진다. 교회의 견고함은 그리스도라는 훌륭한 기초를 가지고 있고,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에 기인한다.
10항 “성도의 교제와 죄의 용서를 [나는 믿습니다]”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 조항 가운데 교회 안에는 선의 공유가 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를 의미하며 교회 지체의 머리는 그리스도가 되신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선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지고 이 교제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의 덕이 작용하는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수난의 덕은 죄를 용서해주는 은총을 수여하기 위해 작용한다. 교회의 성사는 세례,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종유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 7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7성사를 통해 우리는 죄 용서를 얻고 그리스도의 수난의 덕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의 공로 역시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모든 이에게 전해진다는 것과 어떤 한 사람의 선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진다는 2가지를 얻게 된다.
11항 “육체의 부활을 [나는 믿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영혼과 관계하여 거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 우리 몸을 부활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오는 유익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죽은 이들에게서 느끼는 슬픔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행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고 열심을 내도록 해주며 악으로부터 돌아서게 한다. 또 부활한 사람에게는 몸의 동일성과 불멸성, 온전성, 나이의 회복이 있습니다. 선한 이들에게는 특별한 영광으로 광채와 무정념과 민첩성과 섬세함이 있고 정죄 받는 이들은 몸이 어두워지고 불 가운데서 타면서도 연소되지 않고 영혼이 묶여 있으며 어떤 면에서 영혼과 몸은 육적일 것이다.
12항 “영생을 [나는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바라는 신앙 조항들의 목적은 영생이다. 그렇다면 영생이 어떤 삶인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된다는 것이고 연합의 성격은 완전성과 찬양에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 영원한 삶은 욕구가 완전하게 충족되는 삶인데 현세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없을뿐더러 창조된 것은 사람의 욕구를 결코 충족시키지 못한다. 즉 하나님만이 그것을 충족시키시며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완전한 즐거움이란 최고선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이며 영원한 삶에 안에 모든 것이 풍성하게 있다. 영원한 삶을 통하여 우리는 완전한 안전을 누릴 수 있고 모든 행복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사귐이 가능하다. 반대로 악인들은 모든 선한 것들로부터 분리되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지옥 불의 감각적인 벌의 고통을 받고 구원의 희망이 전혀 없게 된다. 그렇기에 선한 것은 생명으로, 악한 것은 죽음으로 이끌기에 이것을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사도신경의 기원은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적 전승의 세례문답으로까지 연결된다. 고대 로마 교회에서 사용되던 신앙고백문에서 사도신경이 서방 교회 전역에서 사용되게 된 배경은 서방에서 로마가 차지하던 정치적 위상과 프랑크 완국의 샤를마뉴 대제의 예배 예전문 통일화 정책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신약성서에 나오는 복음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사도신경을 신약성서로 돌아가 성서에 비추어 풀이하려고 애써야 한다. 사도신경은 구원론적 성격과 기독론적 성격이 강하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기독론과 창조론을 연결하면서 성육신의 일회성과 창조의 영속성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는 차이를 보인다. 이는 내용상 차이라기보다는 신학적 강조점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도신경은 말 그대로 사도성과 사도의 특징이자 표시성을 드러내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