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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민족주의 본문

허구의 민족주의

빛나는 새벽별 2018. 8. 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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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스 울리히 벨러

 

출판사  : 푸른역사

 

가격 : 12,000원

 

       민족주의, 우리가 중학교 때부터 국사나 세계사 등 역사에 관련된 시간에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어 중에 하나이다. 세계사에서는 흔히 2차 세계 대전을 예를 들면서 일본의 군국주의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등을 이야기 하는 것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듣던 민족주의라는 단어는 무슨 뜻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에 관해서는 그렇게 많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배우는 과정 중에 하나고 내가 속한 민족에 대한 것이 민족주의라고 크게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스 울리히 벨러는 민족주의가 인간이 만들어낸, 근대화에 생긴 허구적인 단어라고 주장하면서 역사에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단지 이 단어 하나가 사람들과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흔히 한스 울리히 벨러라고 하면 역사적 사회과학 학파의 대부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역사에 있어서는 권위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왜 민족주의가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책을 보면 일단 민족주의라는 단어 자체의 어원부터 살펴보는 과정이 나온다. 민족주의라는 단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생긴지 오래된 단어가 아니다. 단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세계관이 구시대의 정치사회적 제도와 이 제도를 뒷받침하던 세계관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의미를 내포하게 된 단어인데 그렇다면 이 단어 아래에 어떻게 그 많은 힘들이 생겨나고 그 힘들은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서양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이용하여서 성공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화 되지 않은 국가와 식민지 그리고 후진국들은 민족주의와 민족국가라는 제도 자체를 빨리 추구해야 되고 가능한 한 모방하여서 자신들의 국가적 발전에 사용되기를 바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라는 것을 이용해서 힘을 모으는 구심점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그 자체가 스스로 설정한 이중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민족주의 단어 자체 존재에 어폐가 생긴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사전에서 찾아보면 민족의 통일과 독립 발전을 최고의 이념적 가치로 여기고 중시하는 주의를 의미한다. 즉 민족주의라는 것이 전제되려면 일단 민족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흔히들 민족이라고 하면 같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서 살게 된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일단 지구상에 있어서 정확하게 자기 민족만을 포함하여서 민족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존 밀림에서 살고 있는 인디언들조차 그들만이 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디선가 유입된 인종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이 미묘하고 얼마 되지 않기에 크게 주를 이루고 있는 민족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지 않아서 넘어가지만 정확한 정의에는 일치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 번째로 통일과 독립 발전을 위해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즉 민족주의에서는 민족 간의 통일이 전제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넓게 풀이한다면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는 민족 간에 분할되어 있다면 그것을 통합시키기 위해서 행해지는 모든 행동들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무서운 논리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적인 역사를 보아도 크게 민족주의 아래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핍박하지만 단지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혹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라고 정당화 시킨다. 이는 즉,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존재해야하는 민족주의가 동일 민족에게 서로 칼을 겨누게 할 수도 있고 또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전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하는 이념임을 볼 수 있다. 정리한다면 민족이 발전하기 위해서 통합되어야 되는데 그것의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해석에 의하여서 모든 방법과 수단이 정당화 될 수 있으며 그 발전에는 또한 동일 민족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속한 민족을 위해서는 다른 민족을 짓밟고 다스리는 것도 또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정의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민족주의라는 것이 서구에서 생겨나고 전해진 것일까? 동양에서는 왜 민족주의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유인 즉, 민족주의는 결코 모든 민족들과 문화들의 발전선상에 존재하는 당연한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부터 역사를 살펴보면 충성과 자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다. 현재도 존재하는 미국과 영국의 유명한 가문이라든지 혹은 각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은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지금은 한 개체와 개인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소속되는 곳이 너무나 많지만 예전에는 본인이 소속된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즉 본인이 소속된 하나하나가 현재보다 많은 가치를 가지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가문이다. 혈족으로 맺어진 것은 어느 것보다 보이지는 않지만 끈끈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속담에도 오죽하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인류사회는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되어서 계급사회가 시작되었다. 물론 서양에서는 그것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 왕이 존재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은 통치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정당성과 동기를 부여받아야 통치하는데 있어서 수월할 것이고 또 올바른 대의명분은 본인의 확립된 왕권과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조건 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고대가 왕으로 흘러가다가 중세의 신의 중심인 사회에 넘어오게 되었다. 신이라는 것 앞에서는 어떠한 것도 정당화 될 수 없고 부딪혔을 때 이길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는 즉 어떠한 이론과 어떠한 정당성이 있어도 신의 의지 내지는 뜻 앞에서는 미약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인즉 신을 믿지 않은 사람들도 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외심은 존재했으며 중세 크리스트교에서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대항하는 것 자체를 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에는 어떠한 점도 크게 발달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등등 단지 종교적인 것에 있어서만 인정하는 암흑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근대의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이 때, 중세에 눌려있던 인간의 대한 욕구와 사람에 대한 애착이 계속 흘러나오게 되고 또 계몽주의와 성경의 보급 등 여러 가지의 조건으로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논제가 성립되게 된다. 이는 즉, 고대처럼 사람들을 통치하는데 있어서 왕의 권위나 정당성으로는 단순히 눌러서 통치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 있어서 위정자들은 사회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서는 누구도 수긍할 수 있으면서 그 이념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어떤 것이 필요하게 됨을 느끼는데 사람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이 민족 즉 인간 본능의 피의 결합체라는 것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을 볼 때, 동양에서 민족주의라는 것이 생겨날 수 없는 이유는 중세처럼 신이 중심이 되어서 모든 이론을 격파하고 한 이론만이 우뚝 서버리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양의 발달사를 보면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볼 때) 부족국가에서 고대 삼국시대로 그리고 후삼국, 고려, 조선 등으로 넘어오는데 그 때 주요 받침이 되었던 이념들은 다 유교지만 동양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중요시 여긴다. 일본의 현재까지의 생활상을 한 단어로 줄인다면 화()로 줄일 수 있고 또 우리나라의 유불도의 조합과 음양오행 등을 볼 때, 주로 이끌어 나간 이념은 유교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혼자 독단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나가면서 발전했기에 민족주의라는 것이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

 

       그리고 유럽 서구의 특징 중 하나인 중세라는 시점에 봉건제라는 것이 동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봉건제도란 중세 유럽에서 영주 귀족 신하의 사이가 봉토의 급여와 군무의 봉사를 통하여 사적 인격적 계층적으로 결합된 제도를 일컫는다. 물론 동양에도 봉건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옛 나라인 은나라 혹은 일본의 옛 제도를 보면 봉건제도가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 봉건제도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동양은 나라 자체가 부족 간의 결합 즉 혈족간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크게 민족주의라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까지도 안동 김씨의 종손 집의 제사를 본다면 이 바쁜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도 옛 예절을 지킬 것은 다 지키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한국이 혈족으로 각각 이루어진 사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서양은 혈족 보다 넓은 의미의 민족을 이루었고 또 국가의 구성원리가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라는 것이 동양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 나라의 전설을 보면 단지 뛰어난 사람이 세우거나 어떠한 민족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되짚어 볼 때 한사람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에 의해서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후예로서 어떠한 일을 해야만 한다 등 사람들에게 강요성은 아니지만 강요성보다 더 큰 강요성을 지니게 되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잘못 드러나게 된 것이 히틀러의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 등이 있을 것이다. (특히 히틀러는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여 게릴라 족 이외에는 하등한 민족으로 특히 유대인은 말살시켜야할 민족으로 지정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하지만 동양은 대체적으로 어떠한 신으로부터의 출발이 많다.(한국 - 단군신화 , 일본 - 신화, 중국 - 여와신화 등) 동양의 시작은 신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어떠한 신 아래서 뭉쳐서 살아가는 민족으로 우월성을 나타낼 수 있지만 그것으로서 더 나아가려고 하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인류의 시작을 인지하는 개념 자체가 서양과 동양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인지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민족주의라는 것은 서양에서만 나올 수 있는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전파된 이유는 그 당시 서양에 해당되는 모든 국가들이 삶의 질과 높이를 볼 때 결코 낮은 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모방하고 더 잘 살기 위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는 흩어져 있던, 즉 개인의 힘을 전보다 더욱 키워놓은 근대라는 시대가 민족주의라는 이념 아래에 뭉쳐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각지에서 혁명을 일으키는데 그것들이 다 성공을 해서 처음에는 개인의 삶이라는 미명 아래에 모이기 시작하지만 그것을 지속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이념이 필요한 것인데 거기에 들어맞는 것이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이란 누가 강요한다고, 혹은 핍박한다고 바꾸거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 순간 나는 어떠한 민족이라는 것이 결정나버린다. 여기서 민족주의라는 이념의 불평등성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현대에 중요한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그 노력만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노력을 쏟고 일함으로서 계속 얻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것은 옛날 신분제가 존재하던 사회와 같이 태어나서 한번 소속되면 어떻게 바꾸어 볼 수 없는 소속이 되어버린다. 이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민족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만 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말한다. 현대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법치주의가 다스리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개인의 결정이며 그 결정에 대해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책임을 진다면 거기에서 주어진 자유는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어느 나라의 법전을 보아도 대부분 사람들의 인권 내지는 권리를 주장하고 보장하는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시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에서 벗어나는 결정 중에 하나인 것이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지위이다. 그것은 법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인데 예를 들어 내가 부모님을 고르고 싶어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혹은 내가 태어나게 될 때 남녀의 성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 등일 수 있을 것이.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어떠한 이념 위에 있는 것일까? 서양에서 그렇게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 사회적 등 여러 곳에서 어느 정도의 단단한 이념이 연결되어서 존재해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행했다는 것 정도는 추측해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여러 가지 사상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첫째로 성경적인 요소를 받아들였다.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인데 이 선민의식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민족을 구원하고 어떠한 약속한 땅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는 것을 이야기 한다. 여기서 선민에 해당되는 민족과 아닌 민족이 구별되며 이것을 좀 더 확대해서 일반화 시킨다면 적과 나의 구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오히려 사람들의 정체성을 정해버리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또 신이 자기의 민족들을 구원하는 시점은 세상의 종말과 관련 있기 때문에 종말론과도 관련이 있다. 또 민족 내에서는 평등하다는 점은 종교의 평등사상, 꼭 종교 사상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평등하다는 근대적인 사상도 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종교저거 전통들이 세속화 되면서 민족주의 속에 녹아들어갔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어떠한 면에서는 정치적 종교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개념으로 민족주의를 정의하는 것이 가장 근접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의 옳고 그름을 나누는 분별력으로 나누는 것은 민족주의가 종교와 같이 거대한 문화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종교라는 것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가 믿는 종교가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종교와는 차이를 가질 수 있지만 고대의 민족신으로부터 중세의 카톨릭 근세의 민족(민족이라는 단어 뒤에는 어떠한 민족을 지탱해주는 신과 같은 존재가 존재함을 믿는다) 현대의 개인(신이 무기력해지고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팽창하면서 개인의 힘이 강해지는 현상. 하지만 발전함에 개인의 고립과 고뇌, 불안에 대한 것으로 인하여서 다시 신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개인도 늘고 있는 추세임)으로 줄일 수 있겠다.

또 민족주의는 정치적인 종교주의로도 이루어져 있다고 하겠다. 짧게 책에서는 민족주의의 정치적 특징을 10가지의 요소로 줄여서 이야기 한다.(책에서 이야기 하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정치적인 민족주의에는 종교주의가 당연히 가미되어 있다) 첫째로 이생에서의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게 만들고, 포괄적인 존재 의미를 부여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인간 자체의 불완전성으로 완전한 신에게 의지하고 나에 대해 알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평생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나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다. 즉 정체성에 대한 문제인데 그것을 신 안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을 정치적인 것에 민족주의가 스며들어 민족 안에서의 나의 위치를 자각하고 나는 약하지만 민족이 결합하고 모였을 때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둘째로 최상의 가치를 위한 순교를 요구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하나의 세계관이 될 만한 의미를 만들어 줄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사람이 목숨을 거는 데에 있어서는 개인의 신념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셋째는 진리에 대한 해석에서 다른 것과 비교하여 타협 없는 독단적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둘째와 셋째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는 이것을 통해서 민족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정당화 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민족주의가 독단적인 이념이 되어서 적과 나의 구분, 그리고 정당화의 출발은 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주장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가 한번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면 결코 무너지는 것은 민족 내부의 분열 혹은 외부의 지나치게 강한 압력이 아니라면 힘들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가능한 모든 조건에 적용되는 규범과 행동요령이 담긴 포괄적인 세계관을 기획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족이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로 연결해주는 법 같은 강제성은 가지지 않지만 오히려 법이 주는 강제성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여서 민족이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이념이다. ‘개인은 약하지만 조직은 강하다 하지만 조직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개인의 힘은 더 약해진다.’ 라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의 조직의 성립은 개인과 조직 모두의 일정량의 행동의 범위나 권력에 있어서 넓어지지만 조직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강해지게 되면 개인이 누리던 자유조차도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자유와 평등의 논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현대에서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확실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각 국가마다 개인의 민족과 상황에 맞추어서 2가지의 가치를 다 포기하지 않고 실행하고 있는 것은 각 국의 법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섯째는 핵심 내용의 독단성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높은 유연성을 지닌다 라는 점이다. 대학 같이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거나 이사를 처음 갔을 때 상대방과의 벽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공동체가 생기면 그 사람과의 벽은 사라지고 새로운 개체의 침입 내지는 발견 되었을 때 생기게 된다. 이는 공동체가 개인에 비해서 주변에 적응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공동체와 민족의 차이점이라면 공동체는 노력하면 대부분 다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지만 민족이라는 것은 타고날 때부터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즉 민족이라는 서로 간의 벽은 뛰어넘을 수 있는 벽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는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정신적 기본 강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가 내는 힘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1+1=2 가 아니라 2보다 더 큰 숫자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이다.

 

       나머지 4개도 다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육체적 강령들이다. 우리집단의 인식과 타인 집단의 구분, 세계관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도식화시킴, 완성된 민족을 통해 현세의 불이익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구속력 있는 세대계약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다. 종교적인 면을 하나 더 보자면 마지막 열 번째가 민족을 위한 희생적 죽음을 통해 이생에서의 계약적 약속의 의미를 믿게 만드는 초월성을 연계시키는 것이다. 옛 말에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 뒤에 물질적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과 명예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민족주의는 죽음을 민족이라는 이유로 정당화 시키고 그런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서 민족의 부흥과 중흥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가까운 예로 2차 세계 대전에 일본의 자살테러단 같은 것이 그런 예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미국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도 이슬람 종교에서는 순교라고 생각한 행동 중에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라는 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어떠한 이념으로 심어져서 그들에게 어떠한 행동 내지는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민족주의라는 것에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거나 배워야 할 점이 없는 걸까? 허구의 민족주의라는 책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서구의 산물이며 없어져야 할 단어이고 현대의 국가를 헌법 국가, 법치 국가, 사회 복지 국가라고 언급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민족주의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일단 사람의 성격과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은 약하지만 그 개인들을 모을 수 있는 조건이 생성된다면 어떠한 집단이라는 것이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때 발휘되는 힘은 개인과 개인의 힘을 더한 이상의 힘이 생성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단이라는 큰 힘 속에 존재하면서 그 속에서 개인의 권리와 힘을 발휘하는 것을 원한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개인이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인간이 누구보다 타고난 육체적인 것이 약한 것을 인간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집단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단지 느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어떤 사유가 있어야지 그런 공동체의 존속 기간이라든지 기강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본능 중에 민족주의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혈족에 집착하는 것과 상통하여서 인위적으로 가미되거나 산개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될 점은 민족주의가 너무 지나치게 잘못 사용되어서 본인 이외에는 베타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사람은 어쨌든 그 존재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 사람에게 가격과 순위를 절대적으로 매기거나 할당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 자체를 모든 사람에게 맞출 수 없을뿐더러 사람이 가치가 매겨지기 시작한다면 사람의 본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난 저 사람에 비해 가치가 높기 때문에 저 사람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다.’ 이런 식으로 매겨진다면 가치가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끼리 뭉치려고 할 것이고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면 자괴감 내지는 열등의식으로 인하여서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 데에 있어서 모두 양면성을 가진다. 흔히들 동전의 앞뒷면에 많이 비유들을 한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일거일실이라는 옛 말을 보아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민족주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소중히 생각하게 하는 점이다. 현대의 국가들은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많지는 않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단군의 후예라고 외치는 우리들도 점점 갈수록 외국인의 유입이 많아지고 민족 간의 결혼이 늘어나면서 얼굴의 형태라든지 혈통을 보면 점점 다국가가 되어 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쨌든 민족끼리 이루어진 국가에 대해서 민족주의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깨닫게 만든다. 이 국가를 조상이 피땀 흘려서 세웠고 그것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후손에게 잘 물려주어야 된다는 어느 정도의 의무감마저 가지게 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국가와 국기를 그리라고 부탁받았을 때,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알려주는 사람을 드물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국가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 1.2 절은 잘 알지만 3,4절은 헷갈리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국기를 그려도 빨간 색이 밑인지 위인지 오른쪽이 위로 올라가 있는데 내려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이런 점에 있어서 국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첫째로 하게 만든다. 내가 국가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될 것들과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야 하는 동기를 만들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을 예로 든다면 요즘에 미국과 선진국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영어가 제2외국어가 아닌 필수가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만큼 영어는 경쟁력이고 본인의 능력이라는 것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영어에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정작 한국어를 영어의 문법만큼 알지 못한다. 필자조차 한국어의 문법은 고등학교에 배운 것으로 지금은 기억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점점 잊어먹을 것이다.

 

       필자는 허구의 민족주의를 읽으면서 이 파트를 생각하면서 교육이 인간의 본능인 지적인 호기심을 해결시켜 주는 도구이긴 하지만 국가의 교육정책에 있어서 국사와 국어에 대한 교육의 강화는 지금도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사와 국어의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얘기한다면 민족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강화가 아닌 본인의 위치를 알아가고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국가를 소중히 알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발달해가기 때문에 자본을 가진 개인이 가진 힘은 점점 커져가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의 협력 내지는 개인이 포함된 공동체의 가치 내지는 중요성의 인지를 갈수로고 줄어든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지만 그 중에 효과적인 것이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교육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인간 본능 중에 지적인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 욕구에 본인의 소중함과 가족, 그리고 확장하여서 국가 그리고 세계, 끝으로는 이 지구와 우주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민족주의는 없어져야 될 것이 아니고 약간의 손질을 본 뒤, 꼭 사회에 적용시켜야 할 주요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어쨌든 본인이 해당되는 민족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좀 더 깊게 본다면 개인 개인을 민족이라는 울타리라는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지만 이런 민족주의가 민족만을 사랑하는 편협적이고 퇴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씀에도 일컫지만 세상이 점점 말세로 갈수록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남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 한국에 존재하던 이웃과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문화인 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아파트의 옆집에 살면서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민족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문화로 바꾸어서 발전시킬 수 있다면 민족주의라는 것은 인류가 앞으로 미래에 인간 본연의 불안과 허무 등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실마리를 보여주는 이념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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