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맥북 #백업 #샌디스크 Portable SSD #삼성 T7 SSD #Time Machine
- #니스툴 #맥북프로 #스탠드 #알루미늄제품
- 아이디어패드프로
- #자유 민주주의
- #RF-S 50MM F1.8 STM #캐논 #단렌즈
- #법치
- 무선충전기 #벨킨 #WIZ017kr #벨킨 3 in 1 #맥세이프(MagSafe)
- #백북프로2021 #맥북에어 #고급형
- #서평
- 애플워치8 #스트랩 #밀레니즈 루프 #스포츠 루프 #나이키 스포츠 루프 #가죽 링크
- #델 #모니터 #u2723qe #2022년 추천모니터 #DELL
- #용호수 $파이널컷반나절완성 #추천
- #철학
- #일본 #가고시마 #해외여행
- #Presonus Eris E 3.5 BT #스피커 #가정용 #로직 #음악작업
- #애플워치8 #건강
- #키보드 추천 # 덱 헤슘 #거북선 #후기
- #pxs-3000 #전자건반 추천 #100만원 미만 건반 추천 #Casio 건반 #교회반주
- 로지텍 #마우스 #Logitec #로지텍 마우스 #G502 #MX MASTER 3 #추천
- #포토샵
- #R10 #캐논 #미러리스
- #벨킨 #a to c #Boost charge flex usb-a cable with Lighting Connector
- #대한민국 정치
- #대한민국 법치
- #초택 #chotech #3-in-1 #무선충전
- #법
- #애플
- #브라더 #무한복합기 #Mfc-t920dw
- #아이폰 루머
- 갤럭시노트10+ #아이폰12미니
내돈내산 & 추천제품 리뷰
한국 교회를 위한 칼뱅의 유산 본문
저자 : 박경수
출판사 : 대한기독교서회
가격 : 15,000원
한국의 기독교에 있어서 장로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로교에는 칼뱅이라는 인물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기에 우리는 칼뱅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칼뱅 연구목록을 자세히 망라한 자료정리와 칼뱅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원문을 꼼꼼하게 번역하는 것과 가장 중요한 칼뱅의 생각을 현실에 맞게끔 재해석 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그의 사상을 신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도 접근해야만 한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적인 잣대이며 현실의 문제를 진단한 후 성서적으로 해결하려 하려는 노력은 밑바탕 되어야 한다. 그는 사회-경제적으로 접근할 때, 칼뱅에게 부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이지만 또한 그만큼 영적인 사명을 지니는 것으로도 이해한다. 그리하여 청지기로 대리인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부를 사용해야 하며 그 태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올바른 정신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발성에 의하여 부의 순환인 ‘구별된 평등’으로 극단적 사회주의와 극단적 개인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말한다. 그는 부의 문제를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또한 무조건적인 이자 제한의 금지와 정직한 상업, 성실한 노동을 장려하면서 소통과 공공성, 그리고 복지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칼뱅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서 부자들로부터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한 종교적 지도자이자 정치 경제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배금주의와 천민 자본주의 등 자본의 힘이 그 어떤 가치와 법보다 우선시되는 사회이다. 삶의 양극화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심해지고 있고 한국 사회 속에서도 중산층이 점점 사라지고 서민층과 부자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임을 통계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솔직히 칼빈의 신학으로 접근한 경제적 원리의 이상점은 일반 사람들도 모두 동의하며 주장하는 맥락과 비슷하다. 이는 절대적인 가치나 선은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가치가 드러나는 방법이나 실행되는 과정은 시대와 문화와 상황에 따라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일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이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즉, 지금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일차적으로 생각이 다를뿐더러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정의의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점이, 하나님의 자녀로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점이 우리의 약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회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바꿀 수 없지만 기독교인의 노력이 적어도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혼자 일하시는 것이 완벽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이는 피조물인 사람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를, 그분과 동행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난한자 억눌린 자 갇힌 자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다. 한국의 각각의 기독교인들 주변에 가난하고 억눌리고 갇힌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육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가난하고 억눌리고 갇힌 자들이 주위를 둘러보면 수두룩하다. 그들을 위하여 있는 자들은 물질을 베풀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없는 자들은 그만큼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일하여 열심히 일한 자가 그만큼의 합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천국은 결코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과 함께 이루어 가야만 하는 곳임을 깨닫고 자족하는 마음과 탐욕의 내려놓음, 그리고 성실함과 사랑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대 교회에 대하여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로서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 모인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지에 대하여 질문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전,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라고 고백하는데 정말 그렇게 여기는가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재 기독교 흐름을 본다면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움이다. 단지 이것은 우리가 부끄러운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우리는 그것이 심각하거나 절실히 해결해야 할 죄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는 성직자와 교회의 비리 문제, 더 나아가 사회의 잘못과 병폐를 보고도 못 본 척 하거나 고개를 돌려버리는 죄를 범하고 있는 현재의 기독교의 모습에서 과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과연 교회는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에 대하여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교회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봉사와 구제 선교와 나눔 등을 행하고 있고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나마 바르게 서 있기에 이 정도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크게 보면 교회는 이제까지 구원, 치유, 위로 등의 제사장적인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하지만 제사장 역할을 넘어서 예언자적인 소명과 왕의 소명까지 바르게 감당하여서 세상의 정의로운 빛과 소금, 소망과 희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올바르게 회복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지 아니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는 쇠퇴의 길을 걸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쉬우나 그것의 해결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어렵기에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이 소명을 올바르게 감당하기를 소원한다. 기독교인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에는 적은 영향력 같아 보이지만 칼뱅을 보라. 루터를 보라. 그들의 변화된 모습과 삶이 당대가 아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 한 사람의 올바로 선 기독교인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만 말이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특별히 교회에 있어서 목회자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지금의 시대는 정보나 교리가 흘러넘치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올바른 교리를 배우려고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자료와 인터넷이라는 매체로 인하여서 풍요 속의 빈곤, 즉 자료와 올바른 교리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올바로 배우려는 노력이 많이 쇠퇴할 수 있다. 또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그 가치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가 배우고 누리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와 노력이 줄어드는 세대를 본다. 또한 올바른 교리가 배워졌다고 해도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목회자들의 생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는 성직자에게 일반인보다 좀 더 높은 도덕률과 잣대를 요구하지만 뉴스나 매체들을 보면 많은 성직자들이 타락하고 그들의 생활에서 절제하지 못하여서 절도, 살인, 횡령, 간음 등의 죄에서 넘어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들에게 실망하고 특별히 그들이 믿는 종교에서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로 기독교에서도 큰 교회 목사님들의 비리나 잘못이 언론을 통해 전달된 후,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다른 종교로 가버린 현상을 볼 수 있다. 영혼구원의 기쁨을 가장 크게 생각하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는 떠나간 영혼에 대하여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회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올바르게 서 있는가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목회자도 인간이기에 죄의 유혹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노출되어 있고 똑같이 넘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이 넘어지거나 좌절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들에게 위로를 허락하시고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허락하시기에 목회자들은 삶에서 하나님을 온전하게 의지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목회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나 모임 혹은 개인을 넘어선 교회적인, 그리고 기독교적인 노력들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즉 목회자 스스로가 하나님께 엎드리고 올바로 서 있으면서 나아가야 할 부분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주변에서 그 목회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그렇기 위해서 칼뱅은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중요 사역인 설교와 성례, 교회 치리와 성도의 상담 부분에 있어서는 맡겨진 사명으로 온전하게 감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리하자면 칼뱅은 그 시대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시대에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르게 이루어 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말이다. 현재 한국 교회가 대부분 장로교회이고 그 말인즉 칼뱅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칼뱅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칼뱅을 보면서 먼저 잘못된 것에 대하여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개혁하려고 노력하는 의지와 실천력을 배워야 한다. 잘못을 알지만 그 잘못을 고치지 않으려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귀찮다는 이유로 또한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잘못을 외면하거나 마주 대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칼뱅은 그의 생애를 통해 그의 삶을 통해서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이 우리의 삶에 와 닿아야 할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그의 사상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마주하게 된 위기를 알게 하고 그 이유와 해결방법까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하여 행하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존재함을 믿는다. 물론 그 시기와 방법과 과정이 모두 같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 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시며 정의와 사랑, 그리고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과연 그 하나님의 모습을 이 세상 가운데 잘 나타내고 있는지, 칼뱅이 부르짖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런 삶을 계속적으로 살아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접근하여 고쳐나가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신자로서의 모습을 보여 나가기를 소망한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교회사 (0) | 2018.08.22 |
---|---|
소크라테스의 변명 (0) | 2018.08.20 |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0) | 2018.08.19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0) | 2018.08.19 |
민주주의와 법원의 위헌심사 (0) | 2018.08.19 |